인생은 아름다워의 귀도는 나쁜 아버지라고 생각함
우선 나치는 만악의 근원임. 나치가 없었으면 귀도와 그 아내가 무슨 선택을 했든 저런 일은 절대 없었을 거임.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이 나치 때문임은 자명함
하지만 부모라는 존재는 자식한테 닥칠 수 있는 위험과 고통을 자신의 힘으로 모두 막을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그 '주어진 상황 내에서' 자식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해야 진정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함
'상황 자체가 부당한 거니까 내가 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든 내 잘못은 전혀 없어' 라는 주장은, 한 인간을 오직 자기 욕구로 창조한 주체로서 책임을 지지 않는 태도라고 생각됨. 방화범이 불 질러서 타고 있는 집에 애를 넣어 놓고 '애초에 방화범이 불 지른 게 부당한 거니까 내가 애를 불 타는 집에 넣은 건 잘못이 아니야' 라고 할 수는 없는 거라고 생각함
귀도는 홀로코스트에 있어서는 100% 피해자지만, 한 범죄의 피해자가 됐다고 해서 다른 모든 도덕적 지탄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님
귀도와 아내가 결혼해서 아이를 갖기 전에 이미 이탈리아에는 파시즘이 불어닥쳤고 유태인도 무서운 처우를 받고 있었음. 그 자식이 태어났을 때 같은 처우를 받게 될 것이란 것은 자명했음
그럼에도 귀도와 아내는 저 난리가 난 와중에 결혼해서 애를 낳음. 단 몇 년을 기다리지 않음
물론 귀도 본인이 유태인이 아니라서 수용소에 안 가도 되는데 아내와 자식을 위해 함께 간 것은 본인 입장에선 대단한 희생이라고 생각함. 하지만 한 인간의 인생을 온전히 결정짓는 부모라는 존재는, '난 이 정도 했으면 됐다!' 라는 통과 인증서를 받는다고 해서 그 자식이 태어남으로 인해 겪는 불행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한다고 생각함. 단지 애를 썼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게 한 인간의 생사를 결정짓는 주체가 되는 일임. 그 정도로 막중한 책임인 거임
귀도가 수용소 안에서 최선을 다해서 애를 속이고 웃기려고 노력했다 한들, 그 애가 영원히 그 나이에 머물러 있을 것도 아닌 바에야, 몇 년만 지나면 자기 아빠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다 이해할 테고 수용소에서 겪은 일도 다 다르게 기억될 거임. 그 하나 하나가 다 평생 떨치지 못할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음. 실제로 홀로코스트 경험자인 감독도 말년까지 트라우마를 겪음
마지막까지 아무 일 아닌 척 자기한테 손을 흔들었던 아버지의 모습이 사실 나치한테 살해 당하기 몇 초 전의 모습이었단 걸 깨닫는 순간 애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겠음?
그 자식 입장에서는 부모의 감상주의와 로맨티시즘 때문에 그런 상황에 태어나서 온 가족이 수용소에 같이 가는 것보다, 나중에 태어나거나 심지어는 안 태어나는 게 나았을 수도 있음. 걔의 의견은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걔의 생사를 결정한 게 저 부모가 한 일임
나는 애초에 귀도와 그 아내가 부득불 그 상황에서 고통 받을 게 자명한 인간을 만들어냈다는 것 자체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이라고 생각해서 그 뒤에 아무리 나름 자기들 생각에는 최선을 다했다 해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함
내가 보기에 저건 비유하자면 애초에 자기들이 불 타는 집에 애를 넣어놓고 나중에 구하려고 최선을 다해봤다는 걸로 위안 삼는 걸로 밖에 안 보임. 그냥 제비 다리 분질러놓고 고쳐주는 격이라고 봄. 물론 제비 다리를 분질러 놓고도 안 고쳐주는 것보다야 고치려고 노력이라도 해보는 게 낫겠지만, 애초에 멀쩡한 제비 다리를 자기 욕구를 위해 분지른 것 자체가 죄기 때문에 그 이후의 대처는 그냥 자신이 일으킨 피해를 간신히 극히 일부 복구해 주려는 것밖에 안 된다고 생각함. 그리고 부러진 다리야 붙인다 쳐도 부러졌을 때의 고통과 트라우마는 사라지지 않듯이, 저 아이가 겪은 고통도 신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은 복구가 불가능함
귀도 입장에서는 자식은 이미 태어났으니 그럼 어쩌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음. 하지만 나는 결과가 뻔한데도 일단 저질러놓고는, '이미 일어난 일 그럼 어떡해. 난 그 이후에 나름 최선을 다했어'라고 하는 주장에 동의하지 못하겠음. 이건 세상에는 후에 어떤 노력을 하든 복구할 수 없고, 따라서 애초에 저지르지 않는 것 밖에는 답이 없는 일도 있다는 것을 간과한 시각 같음. 타인의 생사와 안위, 인생 경로를 함부로 결정지었다가 결과가 처참해진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임. 귀도의 자식한테 일어난 일이 바로 그 일임
물론 어떤 상황에 처한 사람도 번식할 '권리'는 있음. 하지만 권리를 행사하는 것과 도덕적 주체가 되는 것은 완전히 별개임. 자식이라는 타인의 고통을 대가로 자신의 권리를 한껏 이기적으로 추구해놓고는 자기가 좋은 부모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함. 나쁜 부모와 사람의 행동 중에는 법적으로 금지되지 않은 것도 무수히 많음. 당장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보장된 법적 권리를 모조리 행사하면서, 오직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전부 다 행하는 세상을 상상해보면 흡사 지옥 같을 거임. 단적인 예를 들자면 타인의 고통을 모르는 척 하고, 타인을 교묘하게 악의적으로 대하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이용하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지 않음. 만인의 권리임. 하지만 이 모든 권리를 추구하는 순간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게 될 거임. 인간은 설령 자신의 권리를 추구하기 위해서라 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타인의 고통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도덕적 지탄을 받을 수 있는 존재임
귀도는 수용소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서 총을 맞을 정도로 아들을 사랑했지만, 번식 욕구의 충족을 미룰 정도로 아들을 사랑하지는 않았음
그리고 내 시각에서는 자식이 태어나서 겪을 고통보다 자신의 번식할 권리를 우선시하는 부모는 나쁜 부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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