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원작 험버트 험버트는 마지막에 자신의 범죄를 직면함
롤리타는 철저히 험버트 험버트의 시점에서 전개됨. 그렇기에 이 소설은 처음부터 후반부에 이르기까지는 험버트가 자신의 행동을 수만가지로 합리화하고 롤리타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애틋한 사랑으로 여기며, 심지어는 스스로를 가여워하는 묘사로 가득차 있음
그런데 후반부에 이르러 놀라운 반전이 일어남. 결국 험버트가 외면해 왔던 자신의 범행의 실체를 직면한 거임. 그간 애써 떠올리지 않으려 했던, 롤리타가 자신에게 거부와 혐오감을 표현하는 순간들의 기억이 하나씩 떠오르면서, 자신이 롤리타에게 저지른 일은 롤리타에게 있어서는 그저 범죄였으며, 롤리타는 자신을 한 번도 남자로 좋아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 거임. 이 부분은 롤리타의 클라이막스이자 가장 큰 주제의식이 드러난 부분임
결국 작가가 그때까지 험버트의 시점에서 묘사했던 사고의 흐름은 저 주제에 이르기 위한 과정이었음. 험버트의 사고는 소아성범죄자의 전형적인 자기 합리화 과정을 따르고 있는데, 엘리트 백인 남성답게 그 합리화의 과정이 몹시 치열하고 교묘하기에, 거칠고 직설적이지 않기에, 독자들은 '일단 무슨 얘기인지 들어나 보자' 하고 험버트의 시점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됨. 그리고 독자들이 점차 이게 정말로 험버트의 확고부동한 생각이요, 믿음이라는 사실을 당연시 하며 작품의 끄트머리에 다다르려는 바로 그 순간에, 험버트는 그 생각에서 깨어남. 정말 뜻밖에도 거의 결말에 이른 시점에서, 주인공은 새삼스럽게 독자 모두가 작품을 시작할 때 가지고 있었던 상식적인 사고를 되찾으면서 자신의 범죄를 범죄로서 보기 시작하는 거임. 다시 말해 작가는 험버트의 머리를 잠식했었던 착각과 합리화, 변명의 안개에 독자들을 찬찬히 끌어들였다가 마지막에 그 안개를 걷어냄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역시 그랬구나... 험버트 스스로도 무의식적으로는 알고 있었구나... 이게 험버트라는 소아성애자의 사고 방식이었고, 그렇기에 사실을 인정하기가 이렇게 어려웠던 거구나' 하는 강력한 깨달음의 간접 체험을 하게 한 거임
그런데 정말 안타깝게도 롤리타 영화들을 보면 원작의 저런 결론이 전혀 드러나 있지 않음. 영상물인만큼 배우의 연령을 조정하고 대사와 장면의 수위를 대폭 순화했지만, 정작 험버트의 그간의 사고가 스스로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왜곡된 자기 합리화에 불과했다는, 작품 전체에서 제일 중요한 결론은 제대로 표현하지 않음. 이 결론이 없다면 앞의 험버트의 그 불건전하고 죄의식 없는 태도 묘사는 단지 전시에 지나지 않게 되어 버림. 이 깨달음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험버트의 태도는 "그 아이가 먼저 저를 유혹했습니다!"였음. 그런데 그 악랄한 사고가, 훗날 돌이켜 보니 스스로조차 그릇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헛된 변명이었다는, 그렇게나 중요한 결론을 얘기하지 않으면 작품이 어디로 가버리는 거임? 롤리타의 그 날카롭게 벼려진 칼과 같은 통렬한 비판 의식이 전혀 드러나지 않잖아
그리고 주제의식 뿐 아니라 극적인 기승전결을 위해서도 그 클라이막스의 장면은 아주 중요함. 원작에서 그 깨달음의 순간은 처절하고 뼈아프게 묘사됨. 험버트가 양심적이라 후회를 해서가 아니라, 그게 험버트에게는 그만큼 받아들이기 힘든 뼈아픈 현실이었기 때문임. 결국 이 순간은 주인공이자 화자인 험버트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임. 그런데 이걸 표현하지 않다니 그러면 대체 작품의 요점이 뭐가 되는 건지 모르겠음
그래서 나는 1997년작 영화 뿐 아니라 평론가들의 극찬 일색이었던 1962년작까지도 이런 의미에서 망작이라고 생각함. 1962년작 역시 롤리타의 가장 중요한 정수가 빠진 사실상 완전 다른 얘기나 다름 없다고 생각함. 물론 62년작이니 성 인식이 요즘 같지 않다는 점은 감안해야겠지만, 더 오래 전에 집필된 롤리타 원작에 뻔히 써있는 내용을 그렇게 요점 파악조차 못한 건 감독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거라고 밖에는 볼 수가 없음
묺
댓글
철옹 나오는 영화는 봤는데 책을 안봐서 마지막이 그런 줄 몰랐다...영화는 지들이 보고 싶은 것만 중점을 두고 만들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