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는 잭에게 가난한 사람 치고 그림이 훌륭하다고 말한 적이 없다

https://beegall.com/articles/26224
2025/05/02 17:16
조회수: 32

타이타닉 로즈가 처음 잭의 그림을 보는 장면에서, 극장판이자 블루레이판 자막에 의역인지 오역인지는 몰라도 상당한 오해의 소지가 있는 구절이 있음 

 

원문: Jack, this is exquisite work...

원문: They didn't think too much of them in old Paris.

원문: Paris?

원문: You do get around...

원문: ...for a poor...

원문: ...a person of limited means.

원문: Go on, a poor guy. You can say it.

 

여기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굵게 표시한 부분임 

극장판 자막에서는 "You do get around"를 "이 정도면 괜찮아요"라고 번역함. 이건 'get around'를 'get by' 처럼 '그럭저럭 해내다'의 의미로 해석한 번역인데, 사실 'get around'에는 그런 뜻이 없음. 여기서 Get around는 그냥 말 그대로 돌아다닌다는 뜻임

그러니까 저기서 로즈가 했던 말은 사실 이런 뜻임 

 

잭: 전에 파리에서는 알아주지 않던데요.

로즈: 파리요?

(흐음?)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네요.

돈 없... 어... 풍족하지 못한 환경의 사람 치고는...

잭: 말해요. 가난한 남자. 그냥 말해도 돼요.

 

사실 이건 의역의 여지도 없고 명백한 오역이라고 보이는데 저 시절에 저런 블록버스터 영화를 설마 오역을 했을까 싶어서 뭔가 깊은 뜻이 있었던 의역이라고 믿고 싶었음 ㅋㅋㅋ 그래서 혹시라도, 만에 하나 내가 모르는 의역의 여지가 있을까 싶어서 많은 미국인들한테 재차 확인해 봤지만 다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고, 다른 여러 언어의 자막도 확인해 봤지만 저 부분을 저렇게 번역한 나라는 내가 확인한 바로는 한국 밖에 없었음 

이게 중요한 이유는 저 작은 차이가 맥락상으로 큰 차이를 만들어내기 때문임

정식 자막의 "이 정도면 괜찮아요. 가난... 열악한 환경이었을 텐데" 이 대사는 다시 말해 '파리에서는 알아주지 않았을지라도 가난한 사람치고 이 정도면 그림 실력이 훌륭해요'라는 의미잖아. 완전 다른 의미가 돼버림. 이렇게 표현하면 여러 황당한 모순이 생김 

 

1. 로즈의 마음 속 잭의 그림에 대한 평가가 절하됨 

'열악한 환경이었을 텐데 이 정도면 그림이 괜찮다'는 사실상 아예 호평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발언임 ㅋㅋㅋ 

그런데 로즈는 직전에 잭의 그림을 보고 뭐라고 했음? "Jack, this is EXQUISITE work"라고 했잖아? 그게 '가난한 사람 치고 괜찮게 그린' 그림을 본 반응이야? ㅋㅋㅋ 로즈는 잭의 그림이 매우 훌륭하다고 평가했음. 그런데 그 직후에 저렇게 발언할 리가 없잖아

그리고 그 정도로 밖에 평가 안 하는 화가한테 왜 자기 생애 최초의 누드화를 그려달라고 했어? 잘생겨서?ㅋㅋㅋ 

2. 로즈가 무례한 계급주의자로 보임 

화가 면전에서 그림을 두고 "가난한 사람 치고 이 정도면 괜찮다"? 이건 그냥 무례한 거잖아 ㅋㅋㅋ

그리고 저 말에는 가난한 예술가의 작품은 수준이 낮을 것이라는 계급주의적 고정관념이 담겨 있음. 즉 그럼에도 나름 괜찮은 실력을 가진 것을 칭찬해 주는 시혜적 어조인 거임. 그런데 로즈가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야? 로즈는 약혼자가 돈도 안 된다고 폄하한, 설정상 덜 유명한 작가의 그림들을 (영화 소품으로는 유명 작품들이 쓰였지만) 자신만의 주관으로 잔뜩 수집했을 정도로 계급과 예술의 수준이 무관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임. 그런데 저 대사를 저렇게 해석해 버리면 로즈가 지금까지 한 수집의 이유는 뭐가 되냐고 ㅋㅋㅋ 가난한 남자들 치고 괜찮게 그린 게 기특해서? 그런 갸륵한 그림만 모으는 취미가 있어서? ㅋㅋㅋ

3. "파리요? 이 정도면 괜찮아요."는 흐름이 어색함

파리라는 단어를 딱 집어서 놀란 듯 언급해 놓고는 그 뒤에 '이 정도면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건 흐름상 어색함. '이 정도면 괜찮아요'는 파리에서 '내 그림을 알아주지 않더라' 라는 부분에 강조점을 뒀을 때만 나올 수 있는 다음 대사지, '파리'에 강조를 둔 뒤에 나오기엔 어색함. 원래 "파리요?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네요"인데 저렇게 해석하니 뜬금없이 느껴질 수밖에 없음

 

사실 저 대사는 '파리? 와, 너 진짜... 보통이 아니구나. 그렇게 돈이 없다면서도 여기저기 많이 경험해봤네' 이런 의미인 거임. 즉 기껏해야 친근한 너스레 정도의 뉘앙스임. 말하자면 흡사 주 70시간 근무하는 친구가 봉사활동을 세 개 하고서도 내가 갔던 모든 콘서트에 똑같이 갔다 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와, 너...? 그렇게 바쁜 사람 치고 진짜 많이 보고 왔다' 하는 것 같은 그런 반응이었던 거임 ㅋㅋㅋ 일종의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한 거야? 대단한데?' 같은 놀라움과 동경도 담겨 있고 ㅋㅋㅋㅋ 물론 로즈 본인도 직전에 파리에서 초호화 여행을 하고 왔을 것으로 추정되긴 하지만, 지금까지 로즈한테 있어 파리 여행이란 자기보다 열 몇 살 많은 밥상 뒤집는 성격 파탄남한테 노예처럼 팔려가야만 특권층으로서 누릴 수 있는 사치재로 여겨졌을 거라는 점을 감안하면, 잭이 주머니에 단돈 몇 달러 밖에 없는 상태로도 파리에서 자유롭게 살다가 왔다는 얘기를 듣고는 저렇게 반응할 만도 함. 그게 바로 이 영화에 표현된 로즈가 할 만한 대사임. 가난한 남자 치고 그림을 괜찮게 그렸다는 망발이 아니라 ㅋㅋㅋㅋㅋ

 

케이트윈슬렛윈슬럿 레오나르도디카프리오


code: [a7a90]
목록 Gift

댓글


목록
No 제목 날짜 조회수 추천수
로즈는 잭에게 가난한 사람 치고 그림이 훌륭하다고 말한 적이 없다 05-02 33 1
26223 타이타닉 갑판씬에서 만델라 이펙트 겪었다 05-02 22 1
26222 블랙미러 701 그게 바로 당신들이 자식한테 가하려던 삶입니다 05-02 46 3
26221 레버넌트랑 커버넌트 자꾸 헷갈려 05-01 21 1
26220 민 니차쿤 정말 거대하다 05-01 23 1
26219 Thamepo랑 perfect 10 liners 가 잘된거 보면 역시 기본이 중요하다고 느껴 05-01 31 2
26218 ㅃ 수채화풍 토끼 머그컵 [1] 05-01 25 2
26217 에스토니아 드라마는 제목도 만용이었다고 생각함 05-01 51 2
26216 타이니 팀 Tiptoe Through the Tulips 부르다 사망했구나 04-30 35 1
26215 인시디어스 이때 벌써 벽 옷걸이 옆에 춤추는 소년 있음 [1] 04-30 35 2
26214 힘이 없으면 머리가 고생한다. 고로 힘이 있으면 머리가 편하다 [2] 04-30 39 2
26213 인시디어스 1편은 어디서도 볼 수가 없는 건가 [2] 04-30 35 1
26212 ㅃ 흠뻑 젖은 책 복구하는 과학적 방법 04-30 35 1
26211 영퀴) Jungle VIP [2] 04-29 42 2
26210 인시디어스 노래 원래 무서울 의도가 없었다는 게 놀라움 04-29 45 2
26209 90-00년대 작품에서 참신한 척 대강 떼울때 쓰는 설정 [1] 04-28 50 1
26208 Until We Meet Again 전생, 현생 커플 외모 느낌 맞춘 거 좋아 [1] 04-28 32 1
26206 예상대로 핏베베2도 헤븐리가 샀네 [1] 04-27 55 1
26205 문짝만하다는 말 영어로도 그대로 쓰는구나 [2] 04-27 75 3
26204 명품 화보는 모델 이름 좀 써줬으면 [1] 04-27 50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