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짐] 셜록너붕붕으로 집착하는 셜록이 bgsd
어나더포함
꿈을 꿨다. 2년 전, 셜록이 자살쇼를 벌이기 전에 했던 마지막 데이트 장소에 혼자 셜록을 부르짖으며 돌아다니는 꿈이었다.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얼마간의 연애를 거치고 순조롭게 결혼에 골인할 수 있을거라고. 헛된 기대와 망상이라는 것도 모른채 행복한 미래를 꿈꿨다. 그와의 첫만남을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미친 살인마에게 붙잡힌 여주인공을 구하러 온 백마탄 왕자님 비슷한 것 쯤으로 생각했다. 그때까지는 그런 걸 믿었다. 소설속에 나오는 백마탄 왕자님, 돈 많고 잘생긴 재벌 2세, 나 하나만 봐라봐주는 순정남 허울만 좋고 하등 쓸모없는 그런것들. 그러나 현실은 미친 싸이코패스와 조금 덜 미친 자칭 고지능 소시오패스의 게임에서 희생당할 뻔한 길거리에 널리고 널린 평범한 행인이었는데 말이다.
마이크로프트 홈즈의 말이 맞다. 이 세상에 운명 같은 건 없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셜록을 열렬히 사랑하던 때가 있었다. 셜록이 그 빌어먹을만큼 정확한 추리로 내 사생활을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털어버릴 때가 멋져보일 만큼, 셜록의 질 나쁜 버릇들 마저 귀여워 보일만큼, 가끔 셜록이 2년간 죽은 척 하지 않았더라면, 적어도 나에게 말 한 마디라도 살아있다라는 작은 증거 하나라도 남겼다면 아직 사랑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부질없는 상상이 지독하게 무기력하고 지루한 하루 중에서 제일 재밌는 일이였다.
2년동안 슬픔과 눈물이 내 감정을 모두 앗아간 건지 이제는 무기력만이 남아 나를 갉아먹는다. 아직까지 셜록의 옆에 남아 연인행세를 하고 있는 건... 나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 이 관계가 지속되지 않는다면 나에게 남는게 없어서일까. 그렇다고 이 지독하게 무감각한 관계를 끊어내기 싫은 건 아니었기에 오늘 오후에는 셜록에게 이별통보를 할 수 있기를 다짐하며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자 셜록이 으레 그렇듯 두 손 끝을 모으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는게 시야에 들어찼다.
그런 그를 보기 싫어 시선을 옆으로 돌려 쇼파에 새겨진 기하학적인 문양들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내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도 진득하게 달라붙어오는 시선과 나를 내려다 보는오만한 표정에 다시 짜증이 밀려와 인상을 찌푸렸다.
지가 뭔데 날 저딴 눈빛으로 봐? 다시 사춘기 시절로 돌아간 것 마냥 그의 모든 행동에 토를 달고 싶었다. 그마저도 금세 귀찮아져 허울뿐인 웃음과 칭찬을 늘어놓는 게 다였지만. 하지만 오늘은 그의 비위조차 맞춰주고 싶지 않을 정도로 셜록이 귀찮았다.
"기분이 많이 안 좋아보이는데. 어제 다시 악몽을 꿔서 그런가?"
그 악몽의 원인이 누군데?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일렁이는 분노를 느끼며 셜록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셜록은 한쪽 입술만 비틀어 올려 웃고 있었다. 저 웃음이 비웃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의 얼굴을 갈겨버리고 싶은 충동이 올라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저 웃음의 이유는 간단했다. 내 시선을 다시 저에게로 돌려놨다는 만족감, 내가 온전히 그의 것이라는 독점욕. 셜록은 나에게 남아있는 감정들을 확인하기 위해 나에게 남아있는 그의 잔재들을 건들였다. 그게 상처가 되든 싸움의 원인이 되든. 셜록은 나와 그 사이에 연결되어있는 감정의 끈들을 건들이는 것에서 쾌감을 얻는 듯 싶었다. 마치 내가 셜록과의 관계에 권태를 느끼고 있는 것을 눈치챈 것 처럼.
내 시선이 셜록을 3분 이상 바라보지 않으면 불안해 하며 내가 싫어하는 짓이나 말을 해서라도 내 시선을 그에게 향하도록 만들었다. 또, 내가 셜록이 죽은 것처럼 꾸몄을 때를 회상하는 악몽을 꾸면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그에게 종속되어 벗어나질 못하는 것을 기뻐했다. 그가 심어놓은 그의 흔적들이 착실히 나를 옭아매고 있음을 확인하는 행위였다.
나는 셜록이 나를 단순히 흥미로운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비스무리한 감정을 느끼는걸 인정하기 싫었다. 마치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은 죄책감에 휘말리는 기분이었다. 어쩔때는 그가 이 모든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무의식적으로 셜록의 눈을 향하지 못하고 내리깐 눈을 들어올리자 그의 입술이 무어라 말하려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답답함이 끓어 올랐다. 더이상 셜록의 농간에 놀아나기 싫다.
"헤어지자."
그가 먼저 말을 내뱉기도 전에 쏟아내듯 내뱉은 단어에 나조차 놀라 몸이 굳었다. 무거운 적막만이 거실을 감돌았다. 어차피 해야할 말이었으니까. 괜찮아. 굳은 몸을 부드럽게 이완시키고 다시 존의 소파에 몸을 깊숙히 묻었다. 당황으로 딱딱하게 굳은 셜록의 얼굴을 보자 한방 먹인 것 같아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겨우 웃음을 참아내고 여유롭게 셜록을 가만히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충동적으로 내뱉은 말이라 거절의 말이 나와도 딱히 상관은 섮었다. 애초에 셜록이 긍정하는 대답을 내놓을 확률은 0이었지만.
5분 정도 지난 후에 셜록은 아마 아까 꺼내려던 것 같은 말을 시작했다. 조금 놀라 살짝 커진눈을 그를 바라봤다. 개무시는 예상에 없었는데. 나는 화내거나 대놓고 집착할 줄 알았지. 물 흐르듯 이어지는 그의 말을 반쯤 흘려들으며 눈을 굴리다 그의 말을 끊었다.
"헤어지자니까?"
"농담 아니었나?"
"농담? 내가 농담으로라도 이런 말 하는 거 싫어했던 거 모르니?"
"알아. 나는 단지 네가 그런 말을 내뱉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서-"
황담함에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어이없다는 내 반응에 셜록의 입매가 긴장으로 팽팽하게 당겨졌다. 푸른 눈동자에서 당황과 분노, 광기가 느껴졌다. 나를 소유한 것이 아니었다는게 당황스럽고 나를 가지지 못한거에 분노를 느꼈겠지. 오랜만에 진심으로 웃어서 약간은 어색하게 올라간 광대를 만지작거렸다. 한 번 내뱉으니 꺼릴것이 없어졌다. 참으로 웃긴 일이다. 이것 때문에 내가 몇날 며칠을 고생했는데 이렇게 쉽게 나오다니. 뭐가 어찌되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밝게 웃는 얼굴에서 내뱉어진 말은 웃는 얼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너랑 더이상 못사귀겠어. 헤어지자."
언제 부터였을까. 그녀가 나에게서 등을 돌린게. 허니가 한 순간의 충동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그가 제일 잘 알았다. 그녀는 셜록이 없으면 숨이 막혀 죽어버릴 것처럼 굴었었다. 그를 바라보는 투명한 눈에는 악의나 혐오감이 존재하지 않았었다. 감정과 벽을 쌓고 느끼지 않으려 한지 십수년이 지나 사랑이나 애정같은 감정을 알아차리거나 표현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졌지만, 그 세월동안 받아왔던 악의나 혐오는 내게 친숙한 감정들이었다. 덕분에 아무리 더러운 감정들을 숨기고 있어도 알아차리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셜록은 혹시나 놓친 것이 있나 싶어 그녀의 살짝 휘어진 눈 속 깊은 곳을 들여다봤지만 경멸하는 감정들은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오히려 약간의 해방감, 무엇인지 모를 감정의 고조. 저도 모르게 꽉 말아쥔 손을 풀었다. 내게서 떠나려고 한다면 붙잡으면 되는 것이고, 떠났다면 다시 데려오면 된다. 꽤 오랜만에 맑게 웃는 그녀의 얼굴을 마인드 펠리스에 천천히 새기며 느슨한 웃음을 제 입에 걸쳤다.
셜록의 단단하게 굳었던 입매가 비소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허니는 살짝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저 미친놈이 왜 저러지. 셜록의 얼굴을 살짝 노려보던 허니가 몸을 일으켜 겉옷을 챙겼다. 셜록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겉옷을 입고 옷깃을 여몄다. 30초가 30분처럼 느껴졌다. 그 시간동안 허니의 눈동자는 셜록의 얼굴, 손, 다리, 상체의 위치 등을 살폈다.
"난 갈게. 앞으로 안 만났으면 좋겠어."
허니가 221B의 문을 나서는 소리가 들리자 아무말도 하지 않던 셜록이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집으로 돌아온 허니는 떨리는 손을 내려다봤다. 셜록과 함께 수사를 했던 시간은 헛된 것이 아니였는지 그녀는 사람의 작은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의 심리를 유추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셜록은 그녀에게 재능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파악하는 속도가 느려 최대한 시간을 끌어 셜록을 관찰할 수 밖에 없었다. 셜록은 전혀 초조해 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았다. 허니가 그의 세상에서 벗어나겠다는 선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그녀가 셜록을 관찰한 것에 몇배 이상을 그가 관찰했을 거라는 것이다. 그녀가 정보를 1분 관찰해서 10을 얻는다면, 그는 100을 얻는 수준이었다. 처음으로 그녀가 셜록의 능력에 두려움을 가지는 순간이었다. 허니는 그날 이후로 1주일간 221B 근처도 가지 않았다.
그녀를 잠식한 권태와 무기력에 몸을 맏기고 꿈속을 부유했다. 프리랜서로 일하기 때문에 회사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됐다. 먹고 자고 싸고 씻고 자고 먹고 자고. 그녀의 계획에는 앞으로 1주일 더 똑같은 일과밖에 없었다. 221B에서 눈을 뜨기 전 까지.
따뜻하고 포근해... 잠결에 단단하고 따뜻한 벽에 얼굴을 부볐다. 좀 더 붙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단단한 팔이 그녀의 몸을 꼭 감싸 안았다. 코 끝을 간질이는 시원하면서도 부드러운 향이
익숙했다. 몸을 뒤척이자 커다란 손이 등을 다독이며 그녀를 달랬다.
쉬- 조금만 더 자자. 목소리가 잠겨 더욱 낮아진 셜록의 목소리가... 잠깐, 누구 목소리? 그녀의 눈이 번쩍 뜨였다. 시야는 얇은 천으로 싸인 가슴이 점령했다. 그녀가 발작하듯 몸을 일으키려하자 굵은 팔뚝이 나를 제지했다. 이 미친놈이 그세를 못참고 납치를 해? 잔뜩 성이난 그녀가 셜록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사납게 육두문자를 남발하려던 순간 잠에 취한 셜록이 살짝 눈을 뜨고 그녀를 보며 말했다.
"Good morning?"
너 같으면 안녕하겠냐 새끼야? 한국어로 내뱉어진 욕설에 셜록이 눈을 살짝 휘었다. 그래 이래야 내 허니지. 셜록이 잔뜩 열이 올라 씩씩거리는 그녀의 볼을 감쌌다. 그가 분홍빛 입술을 지분거리자 그녀의 얼굴이 빨개지면서 고개를 돌리려 안간힘을 썼다. 그는 귓가에 웅웅거리는 욕들을 무시하고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 봤다. 잡아먹고 싶다. 눈이 마주친 순간 겁 먹은 고양이처럼 몸을 굳힌 그녀의 이마에 살짝 입술을 부볐다.
그녀는 셜록의 개수작을 막아내며 온갖 욕을 남발했다. 놓으라고 몸부림 치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피가 식는 느낌이었다. 살점 하나,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싹 다 씹어 먹어 버리고 싶다는 눈빛에 무방비로 맹수 앞에 서버린 것 처럼 몸이 굳어버렸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듯 이마에 맞춰오는 입술이 뜨거웠다. 셜록이 씻으러 간 사이 도망치려고 하자 아예 그녀를 안아들어 식탁에 앉혀놓았다. 5살 먹은 애를 돌보는 것 처럼 요리를 하면서 도망가지 못하게 감시하자 그녀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녀는 뚱하게 앉아서 셜록이 부엌을 분주히 돌아다니는 모습을 바라봤다. 밤에 셜록이 그녀를 무리하게 몰아붙여 내가 일어나지 못하면 종종 아침을 차려주던 모습이 겹쳐보였다.
쓸데없이 이런건 왜 떠올라서. 괜히 마음 한 구석이 아렸다. 셜록이 그녀 몫의 음식을 내어주며 입을 열었다.
"궁금한 게 많을텐데."
"날 어떻게 데려온거야? 왜 데려온거고? 내가 너 보기 싫댔잖아."
"첫째, 알려주면 못 데려오게 할 방법을 마련할 거잖아 안 알려줘. 둘째, 내것이 있을 자리로 돌아오지 않아 주워 온게 잘못된 건가? 셋째로, 나는 너 보고 싶어."
뭐? 나는 너 보고 싶어? 주워와? 이젠 사람 취급도 안 하는 건가?1주일간 못 봤다고 셜록이 돌아버린 건가? 아니 이미 돌아있긴 했는데. 소용돌이 치는 생각들에 머리가 아파왔다. 그녀의 정면에는 셜록이 뻔뻔한 얼굴로 앉아 마저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한숨을 안 쉴래야 안 쉴 수가 없네 진짜. 그녀에게 아침을 먹이고 난 뒤 셜록은 만족스럽게 쇼파에 앉아 그녀가 다시 도망치는 것을 모른척 했다. 이제 다시 그녀가 도망갈 차례였으니까.
의외로 너무 쉽게 도망친 그녀는 혹시나 셜록이 고용한 사람들이 튀어나와 저를 잡아갈까 두려움에 떨며 집으로 뛰어갔다. 집에 도착하자 마자 캐리어에 짐을 싸고 친구에게 부탁해 제일 빠른 기차표를 예매했다. 런던은 말 그대로 셜록의 영역이다. 마치 영역 동물인 늑대처럼 자신의 영역을 순찰하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알았다. 런던의 제일 구석진 곳에 숨어들어가도 셜록은 며칠만에 제자리에 돌려놓을 것이 뻔했다. 런던에서 먼 곳으로, 시골로. 허니는 런던을 떠났다.
창문을 바라보는 새파란 눈동자가 시리게 빛났다. 10m 정도 직진, 우회전 후 15m 직진, 좌회전 후 3m 직진. 셜록은 머릿속으로 허니가 달려갔을 길의 경로를 예상하며 창문 앞을 떠났다.
창문을 열 때 손을 떤 흔적이 있으니 심리적으로 많이 불안하군. 최대한 빠른 길로 달려 갔을 게 뻔해. 지금 쯤이면 기차나 비행기표를 예매했겠지. 셜록의 시선이 노트북으로 옮겨갔다. CCTV로 어디 가는지 확인해 볼까, 아니지 확인하지 않는 편이 더 재밌겠네. 눈동자를 내리깔며 셜록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은 마치 사냥을 시작하기 전 기대감에 젖은 이리같았다.
그녀는 런던을 떠나는 기차 안에서 떨리는 손으로 손에 들린 핸드폰을 꽉 쥐었다. 핸드폰은 이미 꺼놓은지 오래고 티켓은 친구 이름으로 예매했으니까 괜찮아. 괜찮을거야. 그녀는 스스로를 위로하며 창 밖을 바라봤다. 만약 셜록이 나를 못 찾거나 포기하면 어쩌지. 습관적인 생각이었다. 그와의 연애기간 내내 해왔던.떠나려는 입장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모순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녀는 벌써 이렇게 까지 길들여졌나 싶어 자조적인 웃음이 나왔다. 알고 있는 것과 이미 세뇌당한 감정은 달랐다. 벗어나고 싶은데 벗어나기 싫다. 그가 귀찮아 죽겠는데 그렇다고 못 보는 건 싫다. 셜록이 원망스럽지만 아직 조금은 사랑한다. 가랑비에 서서히 젖어가듯 그녀의 무의식 속에 셜록의 존재를 깊숙이 심어 놓은 것이 이제서야 실감이 났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2년만에 돌아온 셜록이 그녀에게 가진 감정은 사랑이다기 보다는 기괴하게 뒤틀려 원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있었다. 호기심은 탐욕으로, 애정은 소유욕으로, 사랑은 진득한 집착으로 변해있었다. 그러니까 예전에도 집착이나 소유욕이 조금은 있었지만 셜록이 예전부터 저지경은 아니었다는 소리다. 연애 초반에는 호기심과 관심이었고 연애 중반에는 나름대로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말할 수 있는 감정으로 발전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몇달 전 그 시점 이후로 부터 셜록은 무서울 정도로 많이 변해있었다. 소시오패스의 광적인 집착이 사건과 쾌감에서 그녀에게 옮겨간 것이다.
인적이 매우 드문 바닷가 마을에 자리 잡은 그녀는 게스트 하우스의 전화기를 빌려 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사정을 들은 존은 셜록의 행동에 분노했고 옆에있던 메리도 셜록이 그녀를 찾지 못하게 도와주겠노라고 약속했다. 메리와 존 덕분에 걱정을 덜은 그녀는 씻지도 않고 침대에 쓰러져 잠들었다.
그녀는 메리와 존의 도움을 받아 예상했던 기간 보다 더 오랜 기간 동안 이 작은 마을에서 생활했다. 초겨울에 떠나왔는데 벌써 한달이 지나 한참 한겨울의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눈이 내리는 겨울 바다를 거닐며 자유를 만끽했다. 매 순간 마다 감시하는 시선들도 없었고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 셜록에게 보고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웠다. 짙푸른 겨울 바다가 그녀를 삼켜버릴 듯 넘실거렸다. 또다시 괜스레 셜록과 함께 바다에 왔었던 기억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녀는 한참을 추억속에 잠겨있다 더 오래 있으면 감기 걸리겠다는 생각이 들 때 쯤 발걸음을 돌려 숙소로 걸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 마다 빛 바랜 추억들을 남기면서.
숙소로 들어가자 마자 보이는 셜록에 몸을 굳혔다. 들켰구나. 눈을 감고 쇼파에 기대어 누워있는 셜록은 한달전 보다 더 말라있었다. 그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셜록의 눈꺼풀이 밀려 올라갔다. 떨리는 고동색 눈과 새파란 눈이 마주쳤다.
셜록의 여유롭게 그녀를 데려오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예상 외로 그녀는 철저했고 존과 메리가 그녀를 보호해 찾는 것이 더더욱 어려워졌다. 위치추적 할 만한 전자기기들은 죄다 전원이 나가있었고 구글 위치는 전혀 다른 곳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또, 그녀는 모든 SNS에 일절 접속하지 않았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그녀를 찾기까지 고작 하루정도 늦춰질 뿐이었지만, 그녀가 존과 메리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 제일 커다란 변수로 작용됐다. 그 둘, 아니. 메리만 없었다면 그녀를 찾아가는데 한달이나 안 걸렸을 텐데. 셜록은 그녀가 앉았을 쇼파에 피곤한 몸을 뉘이고 집안을 관찰했다. 꽤 좋은 곳을 골랐군. 그래도 본인 집이 아니라고 좀 깔끔하게 쓴 티가 나는 집에 묻어있는 그녀의 체취와 흔적에 기분 좋은 만족감이 차올랐다. 한 달 만의 재회였다.
***
해변가에 남겨진 빛 바랜 추억들은 파도에 쓸려 내려가 심해를 부유하겠지.
해류를 타고 전 세계를 여행할 거야.
내 고향인 한국에도 가겠지.
영국의 작은 해변가에서 시작한 여행은 한국이 종점일거야.
내가 그곳으로 돌아가는 날, 그때 새로 색이 덧칠해진 추억은 내게로 돌아와 우리 대신 보고 들은 걸 이야기 해 주겠지.
셜록의 손에 이끌려 221B로 돌아온 허니는 쏟아지는 그의 시선을 받아내며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셜록은 런던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오는 내내 한 마디도 없었다. 한 달 동안 떨어져 있어 상당히 애가 탔을 그인데 재회 후 작은 냉소만 짓고 아무런 표정도 말도 행동도 없었다. 단지 조심스럽게 허니의 손을 붙잡아 끌어낸 것이 다였다. 셜록이 말이 없자 불안해지는 사람은 그녀였다. 허니는 몰래 메리에게 문자를 보내고 무거운 공기를 애써 외면하며 찻잔을 구경하는 척 했다. 셜록의 생일날 허니의 손으로 직접 선물해준 찻잔을 처음 보는 것 마냥 열심히 구경하는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이 점점 가늘어졌다. 셜록은 지금 당장이라도 그녀가 그의 곁에 남겠다고 말하기를 원했다. 고의적으로 무거운 분위기를 만들어 허니가 스스로 그가 원하는 말을 꺼내도록 압박했다. 매초 매순간 마다 셜록의 속은 독점욕과 소유욕이 끓어올랐다. 당장이라도 허니의 손목을 붙잡고 침실로 집어넣어 잔뜩 범해 벌을 주고 싶은 충동이 끊임없이 일었다. 그의 인내심이 바닥을 보일 때 쯤 허니는 거의 찻잔을 노려보고 있었다. 결국 그가 입을 열었다.
"찻잔 뚫어지겠어."
"날 좀 놔줘."
허. 거의 동시에 나온 말에 셜록이 바람빠진 소리를 냈다. 허니는 입술을 지긋이 물었다.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그가 날카롭게 벼려진 눈으로 허니를 응시했다. 한순간에 셜록과 그녀를 감싼 공기가 긴장감으로 팽팽해졌다. 허니는 어떻게든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려 주먹을 말아쥐었다. 그런 그녀를 샅샅이 훑는 시선이 진득하게 달라붙었다. 한동안 불편한 침묵이 이어졌다. 메리와 존은 언제 오는거지. 허니의 초조한 시선이 시계를 살폈다. 셜록은 그녀가 입을 열지 않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을 것이다. 사귈 때 부터 보내온 그 나름대로의 삐졌다는 신호였다. 어떻게 네가 내게 상처주는 말을 하냐는.
메리에게 연락을 취한지 벌써 한 시간이 지났다. 이쯤 되면 셜록이 뭔가 조취를 취한 것이 틀림없다. 이대로 가다간 나를 깔아뭉개는 분위기에 못 이겨 사과를 하거나 셜록의 인내심이 바닥나 강제적인 성관계를 맺을 것이 분명했다. 메리와 존에게 그가 심각할 정도의 외상을 입히거나 그 둘을 납치에 가둬놓지 않았을 거라는 걸 알았지만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나에 관한 일이라면 물불 안 가리는 것을 알기에 머리속은 이미 그들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셜록은 안중에도 없었다. 덜덜 떨리는 다리를 제지할 생각도 못 하고 시계에서 눈을 떼지 못하자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느껴졌다. 등줄기를 따라 소름이 일었다. 결국 그의 인내심이 바닥났는지 다가오는 발소리가 거칠다. 경직 된 몸을 움직여 도망을 시도하기도 전에 셜록이 강하게 팔을 잡아당겼다. 고개를 숙이고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미세하게 떨리는 몸을 셜록이 가볍게 토닥였다.
"고개, 들어."
당장. 뒷 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귓가에 분노와 소유욕으로 평소보다 낮아진 셜록의 목소리가 울렸다. 관계를 맺을 때 듣던 흥분감에 낮아진 목소리와 비슷해 괜스레 아랫배가 저릿해졌다. 수치심에 고개를 들지 못하자 그가 거칠게 턱을 잡아 그를 보도록 만들었다. 올려다본 그의 얼굴은 드물게도 일그러진 표정이었다. 흉흉한 기색을 띈 새파란 눈동자가 일렁였다. 언뜻 불안이라는 감정이 보인 것도 잠시 셜록이 입을 맞춰왔다. 스트레스로 버석해진 입술을 그가 애타게 물어왔다. 혀를 내어 입술을 핥기도 하고 아랜 입술을 빨아들이는 그의 몸짓이 간절했다. 입술을 열어달라고 두드려오는 혀를 무시하자 분노한 그가 입술을 세게 물어왔다.
"읏, 잠..까"
고통으로 입술이 벌어지자 그 사이로 그의 혀가 침범했다. 치열을 훑고 자비없이 혀를 뽑을 듯 빨아오는 셜록을 밀어내려 했지만 실패했다. 입 천장을 쓸고 내 혀를 씹듯이 키스해 생리적인 고통으로 눈물이 고였다. 살짝 고인 눈물을 보고 셜록이 만족스러운 신음을 내며 입술에 맺힌 피를 핥아냈다. 노골적인 그의 시선에 얼굴로 피가 믈리는 게 느껴졌다. 피식하고 붉어진 얼굴을 보고 웃는 셜록이 얄미워 노려보자 그가 눈가를 핥았다. 미친듯이 섹시한 셜록에 무의식적으로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다시금 그가 들어오려는 때에 꼴이 엉망진창으로 변한 존과 메리가 플랫의 문을 부서저라 열고 들어왔다.
"셜록!!!!!!! 미쳤어?!!! 미친거야?!!!!"
"허니한테서 떨어져 셜록!!!!"
"..쯧"
"존! 메리!"
잔뜩 흥분한 존과 메리가 순서대로 소리쳤다. 그 둘은 검댕이를 묻히고 있었고 옷도 찢어져 있었다. 차분했을 머리는 잔뜩 헝클어져 고생한 흔적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존과 메리가 그렇게 격양되어 있는 모습은 처음 봤다. 셜록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몰라도 그와 친구라고 믿는 저 둘의 마음에 상처를 줬을 거라는 건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하여간, 정말 완벽한 타이밍이 아닐 수 없었다.
셜록을 밀어내고 존과 메리에게 가려던 시도는 무산됐다. 어린애가 장난감을 꼭 안아 보호하는 것 처럼 그는 날 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목에 핏대를 세우고 나에게 자유를 주라는 존의 말을 가볍게 씹은 그는 나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허벅지에 닫아오는 그의 물건이 불편했다. 잔뜩 흥분한 그것은 존과 메리가 조금만 늦었으면 저들을 알몸인 상태로 맞이했을 거라 말해주고 있었다.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결국 나를 보다 못한 메리가 나와 셜록을 떼어놓았다. 그 틈을 타 존이 나를 그의 뒤로 숨겼다. 셜록의 얼굴에 짜증이 일었다. 존은 셜록의 행동에 상처입고 실망해 너덜너덜 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내 안위를 먼저 생각했다. 그는 여전히 바보같을 만큼 착했다. 불쌍한 존. 그에게 메리가 있어 다행이었다. 한참을 더 말씨름을 이어간 존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친구로서 하는 마지막 충고야 셜록. 이미 네 입장에선 친구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셜록. ...이건, 이건 아니야. 이건 네가 제일 사랑했던 연인에게 할 짓이 아니야."
셜록은 아무말도 없었다. 무표정으로 그저 존을 응시했다. 말을 끝내고 돌아서는 존을 막지도 않았다.
그게 끝이었다.
셜록에게 남아있던 일말의 양심이 그를 괴롭혔다. 잔뜩 흥분했던 몸은 식은지 오래였다. 존이 남기고 간 그 말에 물기가 가득했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본 친우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제 손으로 그렇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존과 메리는 곧바로 레스트레이드 경감을 찾아갔다. 허니의 신변보호를 요청하고 셜록이 허니의 머리카락 한 올 조차도 보지 못하기를 바랬다. 셜록이 허니를 장난감 처럼 가지고 놀고 메리와 존에게 사람을 써 신변에 위협을 가했다는 사실은 레스트레이드에게도 충격이었다. 그는 셜록이 한 짓에 분노했고, 그가 망가졌다는 사실에 슬퍼했다. 허니의 등을 말없이 토닥여준 레스트레이드는 곧바로 일을 처리했다.
며칠 후 셜록에게는 허니에게 100m 이내 접근금지 명령이 떨어졌다. 그게 셜록을 얼만큼 저지할 수 있을지는 레스트레이드도 자신이 없는 표정이었다. 근심이 가득한 존과 메리의 얼굴에 허니가 미소지었다.
"다들 고마워요. 노력해줘서."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녀의 말에 조금이라도 그들의 마음이 편해지기를 바라면서 뒷말을 삼켰다. 허니의 손에 있는 핸드폰의 문자창에는 마이크로프트 홈즈에게 보낸 문자가 반짝이고 있었다.
혹시나해서 적어두는데 이글은 타사이트에도 계시함 다른데서 보면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주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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