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미러 701 그게 바로 당신들이 자식한테 가하려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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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02 02:58
조회수: 41

스포주의 

이 에피소드는 부부인 두 주인공이 한 번도 애를 가질 기회가 없었던 걸 몹시도 슬프게 묘사함. 그런데 나는 그게 오히려 천만다행이었다고 생각함

두 사람은 한달에 단돈 300달러의 여유가 없어서 그 돈을 위해 매일 죽을 듯이 초과 근무를 해야 되는 재정 상태로, 그것도 자본주의가 지금보다도 악화된 미국에서 애를 낳으려고 했음. 최저 요금제라서 한달에 300달러일 때부터 남주는 심신이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초과 근무를 해야 했음. 애를 위한 저축액이 있었다고는 하는데, 그 돈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나오진 않았어도 한달에 1500달러 요금제조차도 부담될 정도였으면 큰 금액은 아니었을 거임. 심지어 아내는 이미 그 시점에서 아예 그 baby money가 고갈됐을 거라고 생각하고 "There is still baby money?"라고 물어봤을 정도니 그닥 큰 액수가 아니었을 거라는 게 짐작이 감. 즉 그렇게 한달에 몇 백 달러씩 고작 몇 년도 못 갈 저축액으로 월급에 300달러 여유도 없는 부부가 디스토피아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을 낳으려 한 거임. 특히나 만약 애가 특수아동이거나 아내가 가진 것 같은 질병이라도 갖고 있으면 저것보다 수십, 아니 수백배까지도 우습게 나갈 텐데, 그때 가서 그 돈을 못 내면 그 애의 삶은 지옥이 될 텐데 그건 전혀 생각을 안 하고는, 피임을 안 하다 애가 생기면 그걸 Happy accident로 여기려고 했다는 거임 

물론 저 부부가 겪는 문제는 사회 현상이고, 저 부부가 무슨 중범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저런 고통을 겪으며 살아야 한다는 건 큰 부조리임. 후기 자본주의의 병폐가 거의 디스토피아에 이르렀다는 그 주제 의식에는 나도 백번 공감함.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주인공이 그렇게나 디스토피아적인 사회에 살면서도, 그 사실을 스스로 뻔히 알면서도 자식이라는 타인을 그 세상에 강제로 내놓으려고 했다는 사실은 변치 않음. 집이 활활 불타고 있다면, 비록 그 불을 내가 지른 게 아니라 할지라도 그 안에 아이를 던져넣는 것은 범죄임. '하지만 애초에 불 지른 놈이 잘못한 거잖아!'라는 말은 그 자체로는 옳지만 본인의 책임 여부와는 무관함. 애초에 잘못한 사람이 있다고 해서 자신한테 부모가 되는 쾌락을 위해 불타는 집에 아이를 던져넣고도 도덕적 지탄으로부터 자유로울 면죄부가 생기는 건 아님. 저렇게 눈덩이처럼 비용이 불어나는 디스토피아 세계관에서, 저 집 아이가 성인이 됐을 약 20년 후면 사회의 모습이 어떨까? 저렇게 학교 교사에 현장 관리직인 두 사람이 맞벌이로 벌어도 필수 재화 금액을 감당 못 해서 불과 몇 년도 못 버티고 자살해 버리는 게 지금 이미 이 세상의 모습인데, 자식이 자라서 그곳에서 반세기동안 노동하며 살아갈 무렵에는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자기들이 그 고통을 당할 때는 그렇게 분노하고, 절망하고, 결국 자살까지 하고 말았을 정도로 괴로웠으면서, 똑같이 그 고통을 당하며 살아갈 자식도 괴로울 거라는 생각은 왜 해 보지 않았음? 자기들한테 누가 그런 삶을 가했을 때는 당장 기물을 때려 부수고 폭행하고 싶어했을 정도로 격분했으면서, 자기들은 왜 똑같이 자식한테 그런 삶을 가하려고 했음? 자기 자식한테 살게 하려 했을 때는 '행복한 사고'라고 표현했던 삶이면서, 예상밖에 시기가 좀 당겨져서 본인들이 직접 살게 되자 그렇게나 큰 비극으로 느껴졌다는 거잖아. 자기가 당했을 때만 고통임? 이렇게 타인, 그것도 자식의 고통에 무감해도 되는 거임? 생판 남도 아니고 무려 부모의 입장이 돼서, 오직 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자기 자식이 겪을 고통에조차 그렇게 무관심하고 부모가 되는 본인들의 쾌락을 우선하려고 했다면, 일면식도 없는 백만장자 CEO가 본인들 쾌락을 우선하기 위해서 타인인 자기들의 고통에 무관심한 것도 당연한 거 아니야? 왜 거기에는 화를 냄? 줄거리가 이렇게 설정되니 주인공을 호감가는 인물로 그리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도덕적 일관성에 결함이 생김. 결국 주인공들은 자기들이 부모로서 자식한테도 안 보여줬던 생명 존중의 자세와 이타심을 CEO한테 바라며 화내고 있는 상황이 된 거임

이 작품은 여주가 임신을 하기도 전에 몸이 망가지고 심지어는 사망하는 바람에 두 사람 사이에 끝내 없었던 아이를 마치 두 사람이 갖지 못한 궁극의 성배처럼 표현해서 비극성을 강조하려 하는데, 타인의 목숨은 내가 갖고 싶은데 못 가져서 아쉬운 물건처럼 표현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함. 이 작품에서 자식의 인명은 '내가 갖고 싶었던 것', '내가 만들어서 즐겨 보고 싶었던 것' 등 철저히 객체화된 의미 이상으로는 표현되지 않음. 이 에피소드의 성패는 전적으로 두 주인공을 안타깝게 표현하는 데에 달려 있는 만큼, 최소한 그 두 사람이 그렇게나 고통스럽다는 삶을 본인들의 기쁨을 위해 끝끝내 타인에게도 가하려다 미수에 그쳤다는 설정은 있어서는 안 되는 거였다고 생각함. 만약 어떻게든 자기 유전자 가진 타인을 만들어 보려다 실패한 아쉬움을 표현하고 싶었으면 최소한 처음에는 아무 생각이 없어서 그러려고 했으나 삶이 만신창이가 되기 시작하자 바로 마음을 돌려 피임을 하기 시작했다는 전개로라도 진행했어야 했다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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