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에서 심장이 내려앉았던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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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21 20:16
조회수: 21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콜럼바인 총기난사 후 자살한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인 수 클리볼드가 쓴 수필임. 1999년 무렵의 처참한 보도 윤리 때문에 17살이었던 딜런 클리볼드의 자살 사진은 대서특필 됐고, 이 책의 저자인 모친 수 클리볼드 역시 그 사진을 봤음. 딜런 클리볼드는 사후 무덤이 훼손될 위험으로 인해 매장되지 못하고 급히 화장되었음. 딜런 클리볼드는 부모에게 학대당한 사실이 없고, 단지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으며 더 나아가 중증 우울증과 조현형 성격장애를 앓은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임. 이 책의 저자 수 클리볼드는 다른 부모들에게 자식의 자살과 범죄 징후에 대해 알리고, 정신 건강 기금에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기 위해 이 책을 썼음

 

어느 오후, 나는 내 옛 친구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 친구는 자살로 누군가를 잃은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내게 물었다. "너는 딜런이 한 짓을 용서할 수 있어?" 나는 할 말을 잃은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극단적으로 달라져 버렸는지를 느끼며. 내게 생각나는 것이라고는 그저 '보통 사람들'에서 벅의 젖은 손이 콘라드의 손에서 빠져나가서 벅이 익사를 하던 장면 뿐이었다. 나는 방어적으로 들리지 않게 내가 느끼는 바를 표현하기 위해 생각을 가다듬었다. "딜런을 용서해? 나의 과업은 나 자신을 용서하는 거야." 벅처럼, 딜런은 나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내가 그 아이를 저버린 것이다. 그 반대가 아니라.

자살이 떠올리고 얘기하기 어려운 것이라면, 살해 후 자살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단지 딜런을 그 아이 자신으로부터 보호하는 데에만 실패한 것이 아니었다. 그 아이가 죽인 모든 이들을 보호하는 데에도 실패한 것이었다. 

 

이 일화에서 엄마라는 존재가 가진 책임감의 무한한 깊이를 느꼈음

앞서 저자는 자식의 범행으로 인해 영영 살인자의 엄마로 낙인 찍히고, 죄책감에 매일 몸부림치고, 줄소송에 걸리고, 유방암에 걸리고, 이혼을 하는 등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삶을 살게 되고, 무엇보다도 처참한 자살로 자식을 잃은 채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고통에 대해서 담담하게 저술했음. 그 부분에서 묘사된 저자의 고통이 너무나 컸기에, 세상에 이렇게 큰 고통도 있을까 생각하며 저자에게 한없는 안타까움을 느꼈음. 그런데 그 후에 나온 저 일화는 실로 내 허를 찌르는 것 같았음. 그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용서를 받아야 할 사람이 자신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니... 만일 누군가의 엄마라는 존재로부터 이 얘기를 듣지 않았다면, 나는 영영 누군가가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을 거임. 저 상황에서 사고가 저렇게 흐를 수 있다는 걸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거임. 이 세상에 이렇게나 큰 책임감을 갖게 하는 사랑이라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여기서 느꼈음. 그간 내가 몰랐던 세상에 대해 조금이나마 겸허히 배우게 된 기분임 

저 구절은 챕터 16에 나오고 원서에서 직접 번역한 거라 국내 번역과는 다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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